애플의 개인정보보호가 바꾼 글로벌 테크의 판도
- 결국 퍼스트 파티 데이터 확보가 모두의 사명이 되었다 -
작년 우리나라에서도 어느 정도 인기를 끌었던 넷플릭스의 다큐멘터리 '소셜 딜레마' 에서는 소셜 미디어의 해악을 지적하며, 그 근본적인 원인은 소셜 미디어가 자신들이 제공한 운동장에서 그 어떠한 담론이 돌아다니든 신경쓰지 않는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그 이유는 결국 소셜 미디어는 유저가 아닌 광고주의 이익에 복무하기 때문에 (왜냐하면 그들의 수익 원천이 광고주의 주머니이므로), 소셜 미디어는 결국 잘못된 메세지와 가짜뉴스로 개별 유저의 삶과 사회가 파괴되는 것은 안중에도 없다는, 다소 공격적인 것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애플은 작년 중순 iOS14 를 런칭하며 IDFA 정책을 변경하는 수를 두었다. IDFA는 다들 아시겠지만 애플이 휴대전화 기기를 생산하며 각 기기별로 부여한 임의 기기 식별자이다. 안드로이드 운영체제를 사용하는 휴대전화는 ADID라는 식별자가 있다. 일반적으로 아이폰에서 운영되는 소셜 미디어를 통해 광고를 하고자 하는 광고주는 해당 미디어를 사용하는 유저들의 IDFA 값을 분석하여 그에게 알맞은 광고를 송출한다. 이것이 바로 '타겟 광고' 이다.
애플의 개인정보보호정책은 바로 이 IDFA 값을 서드파티 앱과 공유를 하지 않을 수 있는 자유를 유저들에게 부여한 것이다. 본디 아이폰은 IDFA가 늘 활성화 되어 있어 서드파티 앱, 이를테면 페이스북과 같은 앱들은 고객의 동의를 얻지 않고도 IDFA를 수집하여 광고에 활용할 수 있었으나, 이제는 유저가 IDFA 추적을 거부하는 옵션을 선택할 경우 광고주들은 유저의 식별이 불가능해지며, 자연스럽게 타겟 광고 역시 불가능해진다. 이를 '옵트-아웃' 이라 부른다.
실제로 FT에 의하면, 아이폰의 대형 소셜 미디어 앱인 페이스북, 트위터, 스냅챗, 유튜브는 올해 상반기에만 옵트아웃으로 인해 총 98.5억 불에 해당하는 매출 손실을 입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우리나라 돈으로 환산하자면 거의 10조 원에 육박한다. 삼성전자의 2021년 3분기 영업이익이 약 15.8조 원이었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이들의 매출 손실이 어마어마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더욱 심각한 것은 이러한 서드파티 광고 매출은 제조원가가 거의 들지 않는 매출이기 때문에, 영업이익에는 더 큰 영향을 끼친다는 것이다.
이는 서드파티 앱의 운영자인 소셜 미디어들뿐만 아니라 광고주들도 상당히 곤혹스러운 상황에 처하게 한다. 한 가지 간단한 예를 들어, 다양한 종류의 남성 속옷을 판매하려고 하는 광고주가 예전에는 1,000명당 5달러의 매출을 올렸다고 가정해 보자. 이 광고주는 올해부터는 단순 계산으로만 2,000명에게 광고가 도달하게끔 광고비를 올려 책정해야 한다. 왜냐 하면 타겟 광고를 쓸 수 없기 때문에, 그 광고주의 광고가 최종 도달하는 자가 남성인지 여성인지 광고주는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광고주는 IDFA 추적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결국 각 유저에게 맵핑된 개인정보에 접근할 수가 없다. 그러므로 광고가 최종적으로 도달한 사람이 남성이었는지, 또는 여성이었는지, 또는 둘 다 아닌지 등을 사실상 추정에 의존해야만 한다. 즉 광고의 ROI 측정 역시 어려워진 것이고, FT의 분석 결과 주요 소셜 미디어의 아이폰 의존율은 낮아도 42%에서 46% 수준에 이르고 있기 때문에 애플사가 어느날 갑자기 하루아침에 망하지 않는 이상 절반의 모바일 광고 효율을 거둘 수밖에 없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현상이 일어나리라는 것을 서드파티 앱 운영자들과 광고주들 모두 알고 있었다. 또한 애플이 IDFA 추적 제한을 도입하면서 슬금슬금 자사가 가진 퍼스트 파티 유저 데이터를 활용한 광고 사업을 키워 나가고 있다는 것 또한 이들 모두는 알고 있었다. 실제로 이 때문에 IDFA 추적 금지 정책 도입 시 서드파티 앱들은 애플의 광고시장 독점 우려를 제기했으나, 이미 각종 가짜뉴스와 혐오발언으로 덕지덕지 뒤덮인 소셜 미디어들의 편을 들어주는 쪽은 아무도 없었고 애플은 순조롭게 해당 정책을 도입하고 실행할 수 있었던 것이다.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서드파티 앱들의 광고 매출이 상당한 피해를 입는 동안 애플의 광고 사업은 순풍에 돛을 단 듯 시장 점유율을 늘려 나갔다. 애플의 앱스토어 검색 광고인 서치애즈(Search Ads) 는 올해 상반기에만 시장 점유율을 무려 3배나 불렸으며, 서치애즈를 애드네트워크로 링크한 앱의 숫자는 그 규모가 2배 증가했다. 지금까지 IDFA 와 ADID 를 활용하여 땅 짚고 헤엄치기로 광고 장사를 해 온 소셜 미디어들은 손가락만 빨게 됐지만 사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결국 애플의 개인정보보호정책은 완벽한 개인정보보호정책이라고 보기 어렵다. 각 기기에 종속된 유저가 결국 그 기기 및 운영체제의 제작사에 개인정보를 봉헌하는 일 자체는 지금까지도 계속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애플의 기기에 탑승하여 정보를 수집해 오던 서드파티들이 철퇴를 얻어맞은 것이고, 그 중 광고비용이 더 값싼 틱톡이나 이미 퍼스트파티 데이터를 많이 확보한 구글을 뒷배경에 둔 유튜브는 그나마 사정이 괜찮지만 스탠드얼론 소셜 미디어로 분투하고 있는 페이스북은 정말로 위기상황을 맞이한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생각해 볼 때, 페이스북이 얼마 전 사명을 '메타' 로 변경하고 다양한 하드웨어를 기반으로 한 메타버스 세계관 구축에 나선 것은 사실 단순한 신사업 창출의 시각으로만 볼 수 없다. 페이스북은 사실상 타겟광고 시장의 절반을 상실함으로써 미래 성장 동력이 자칫 꺾일 위기에 놓였고, 결국 퍼스트파티 데이터의 수집에 명운을 걸 수밖에 없었으며, 때문에 자신들을 퍼스트파티로 두고 자신들이 짠 네트워크에 개인정보를 헌납해 줄 유저를 찾을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어찌 보면 모든 것의 시작은 스트리밍일 수도 있다. 과거의 애플은 아이튠즈와 애플 TV를 통해 사용자들을 더더욱 길게 Lock-In 하려는 시도를 지속해 왔다. 그러나 음악과 영상 컨텐츠 시장이 급속하게 스트리밍 위주로 개편되면서 애플은 결국 음악과 영상에서 모든 헤게모니를 잃게 되었고, 돌고 돌아온 길이 결국 아이폰에 종속돼 있는 수많은 유저들의 개인정보가 된 것이다. 때문에 앞으로 퍼스트 파티 광고와 애플카는 애플의 핵심 사업으로 떠오를 것으로 보인다.
페이스북의 경우, 메타버스에 그들의 명운을 건 것으로 보이나 결국 하드웨어가 기반이 된 메타버스 네트워크 구축을 어떻게 성공하느냐에 따라 미래가 갈릴 것으로 보인다. VR이 됐든 AR이 됐든 결국 인간이 착용하는 가상현실 관련 하드웨어는 구글과 애플 모두가 시도했으나 아직까지 변변찮은 성과를 거두지 못했기 때문이다. 어쩌면 메타는 그들이 페이스북이라는 엄청난 소셜 미디어를 만들어 냈지만 결국 하드웨어 제조사들의 입김에서 자유롭지 못했듯이, 메타버스 세계에서도 비슷한 운명을 맞이할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