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산가치의 근원과 비트코인
요약: 투자 기회란 늘 확실하지 않은 순간에 있다.
[오마하의 현인이 내린 또 한 번의 사망선고]
‘아파트는 임대료를 생산하고 농장은 식량을 생산하지만, 비트코인(암호화폐)은 그 자체로 아무것도 생산하지 않는다. …(중략)… 자산이 가치를 지니려면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전달해야 한다.’
워런 버핏, 2022년 4월 버크셔 해서웨이 주총에서
일찍이 워런 버핏은 비트코인을 매우 부정적으로 평가하기로 유명하다. 그런 그가 올 4월 다시 한번 비트코인에 내린 판결은 위와 같이 변하지 않았다.
그는 비트코인의 자산성을 부정한다. 여느 다른 자산(이를 테면 애플 주식이나 C등급 이하의 회사채)들처럼 비트코인의 가격이 그것의 가치에 비해 고평가되어 있다거나 그런 것이 아니라 가치 자체가 없다고 주장한다는 것이다.
비트코인을 처음 접했거나 전통적 자산(증권, 실물자산)의 패러다임에 깊게 파고든 사람일수록, 실생활에서 당장 무엇을 할 수 없다는 생각 때문에 그의 말이 매우 간결하고 설득력 있는 사망선고처럼 들릴 것이다. 그가 수 십년간 세계적 수준의 전설적 투자자라는 명성과 그에 걸맞는 실적들을 쌓아왔다는 사실은 그의 주장을 더욱 강하게 만드는 것 같다.
그는 투자에 있어서 최고의 ‘전문가’이니까 말이다.
[가치 있는 것의 범위는 고정불변이 아니다]
인간이 농경기술을 익히기 전까지는 사냥과 채집으로 식욕을 해소하고 빠른 기동성을 위해 조촐한 움막에서 주거욕을 해소했기 때문에 ‘토지’라는 것은 (적어도 인간에게는)자산이 아니었다. 땅에서 모종의 생산물이 나오거나 하질 않으니 정착생활을 할 필요가 없고 고정된 장소의 소유권을 지키기 위해 싸울 필요도 없는 시절이었다. 하지만 농경사회가 시작된 이후로는 땅에서 생산물을 만들어낼 수 있게 됨에 따라 토지는 자산으로 여겨지며 토지를 두고 집단 간의 전쟁이 일어나기 시작했는데, 이것이 인류역사상 자산이 아니었던 것이 자산으로 변화한 첫 사례이다.
선사시대의 일만을 논하면 그게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던 것 같으니 비교적 최근의 예를 하나 더 들어보겠다.
현재(2022년 10월 기준) 대한민국에서 커뮤니케이션 앱 중 단연 최강자인 카카오톡이 처음 세상에 모습을 보였을 때를 기억해보자. 지금 기준으로 본다면 카카오톡은 커뮤니케이션 비용이 0에 수렴하고 문자메시지에 비해 실시간 소통성과 직관적인 사용자 편의성 등의 명확한 효용을 가진 존재이자 자산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그 시절 카카오톡이 가진 잠재적 가치가 이정도일 것이라고 상상이나 했는지, 아니 그 전에 카카오톡이라는 것이 생산물을 만들고 가치를 전달하는 엄청난 자산이라고 인식이나 했는지 떠올려보자.
절대 그렇지 못했고 심지어 카카오가 거래소에 상장하고 몇 년 동안 그렇게 큰 주목을 받지도 못했다. 플랫폼(그 당시에는 기차 플랫폼을 의미하기나 했던)이라는 것이 어떤 가치를 지니는지 이해할 준비가 되어있지 않기 때문이었고, 자산과 생산물에 대한 기존의 정의와 패러다임에 깊게 갇혀 있던 전문가일수록 더욱 그랬으리라고 생각한다.
카카오라는 플랫폼이 주는 효용은 다양한 분야에 걸쳐 있지만, 그것들의 공통된 특성은 공급자와 수요자가 효율적으로 만날 수 있는 ‘시장의 형성’이라는 데에 있다. 과거에는 어떤 판매자에게는 멀리 떨어진 사람이 어떤 것을 사고 싶어 하든지 말든지 알 바가 아니었다. 어차피 만나지도 못하고 그 사실을 알더라도 재화를 빠르게 전달할 수단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통신 기술과 운송 수단이 발전함에 따라 물리적 위치의 한계가 대부분 극복되며 공급자와 수요자가 인식할 수 있는 시장의 범위가 넓어졌고, 그 변화와 기회를 포착한 존재가 플랫폼 회사로 발전했다.
가치 있는 것의 범위는 고정되어 있지 않다. 기술이 발전하면서 인간이 인식할 수 있는 대상의 범위는 계속해서 넓어지고, 그에 따라 욕망하는 대상의 범위도 넓어지면서 자산이라고 정의하는 대상들의 범위도 확대되기 때문이다.
비트코인과 같은 암호화폐도 마찬가지다.
중앙 정부의 자의적인 통화정책으로 인한 부작용의 누적에 피로를 느껴 ‘누구 하나도 결정하지는 않지만, 모두가 결정에 참여하는’ 새로운 의사결정 구조가 블록체인이라는 이름으로 탄생한 것이고, 그 블록체인 네트워크를 영속적으로 유지하기 위한 메커니즘이 암호화폐인 것이다.
카카오 데이터센터 화재 사태와 같은 사례들이 중앙화된 데이터 구조가 지닌 ‘단일 실패점(single point of failure)’의 한계를 드러내기 시작했고, 자연스럽게 블록체인의 필요성을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작금의 현실은 비트코인이 탄생한지 겨우 13년이 조금 넘은 상황에서 나타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에 비롯해 비트코인을 비롯한 몇몇 암호화폐들이 각자의 목적에 알맞게 커뮤니티의 힘과 네트워크 가치를 꾸준히 증대시키며 엄연한 자산의 정의를 넓혀가고 있다는 사실에 의심이 없다.
[동굴 속으로 들어간 오마하의 현인]
16세기 영국의 철학자이자 경험론의 창시자 프랜시스 베이컨은 그의 저서 신기관(Novum Organon)에서 자연과 세계를 올바르게 이해하기 위해 피해야할 4가지 선입견과 편견을 우상에 빗대어 주장한 바 있는데, 그 중에는 자신만의 경험이나 환경에 사로잡혀 ‘동굴 속에 들어가’ 세계를 인식하는 편견을 의미하는 ‘동굴의 우상’이 기술되어 있다.
세상의 변화를 최대한 빨리 인식하고 대중의 인식과의 괴리에서 나오는 투자의 기회를 포착하려한다면 자신만의 동굴에서 끊임없이 빠져나오려 애써야 한다. 현재 우리의 인식 모델과 패러다임으로 완벽한 확신에 차서 투자를 할 수 없고 약간의 의혹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 만약 완벽한 확신으로 투자하 수 있다면 그것은 필시 기대수익률이 존재하지 않는 것이 시장의 원리이기 때문이다. 다만 기회의 시간이 끝나기 전에 동굴에서 빠져나와, 확신과 의혹 중 확신의 비중을 최대한 높이는 것이는 것이 진정한 투자자의 무한한 숙제일 것이다.
‘확신만을 갖고 무엇인가를 시작한다면 의혹으로 끝난다. 하지만 약간의 의혹을 갖고 시작함으로써 확신으로 끝난다.’라는 베이컨의 오랜 격언이 동굴에서 벗어나려는 우리에게 큰 힘이 될 것이다.
요약: 투자 기회란 늘 확실하지 않은 순간에 있다.
[오마하의 현인이 내린 또 한 번의 사망선고]
‘아파트는 임대료를 생산하고 농장은 식량을 생산하지만, 비트코인(암호화폐)은 그 자체로 아무것도 생산하지 않는다. …(중략)… 자산이 가치를 지니려면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전달해야 한다.’
워런 버핏, 2022년 4월 버크셔 해서웨이 주총에서
일찍이 워런 버핏은 비트코인을 매우 부정적으로 평가하기로 유명하다. 그런 그가 올 4월 다시 한번 비트코인에 내린 판결은 위와 같이 변하지 않았다.
그는 비트코인의 자산성을 부정한다. 여느 다른 자산(이를 테면 애플 주식이나 C등급 이하의 회사채)들처럼 비트코인의 가격이 그것의 가치에 비해 고평가되어 있다거나 그런 것이 아니라 가치 자체가 없다고 주장한다는 것이다.
비트코인을 처음 접했거나 전통적 자산(증권, 실물자산)의 패러다임에 깊게 파고든 사람일수록, 실생활에서 당장 무엇을 할 수 없다는 생각 때문에 그의 말이 매우 간결하고 설득력 있는 사망선고처럼 들릴 것이다. 그가 수 십년간 세계적 수준의 전설적 투자자라는 명성과 그에 걸맞는 실적들을 쌓아왔다는 사실은 그의 주장을 더욱 강하게 만드는 것 같다.
그는 투자에 있어서 최고의 ‘전문가’이니까 말이다.
[가치 있는 것의 범위는 고정불변이 아니다]
인간이 농경기술을 익히기 전까지는 사냥과 채집으로 식욕을 해소하고 빠른 기동성을 위해 조촐한 움막에서 주거욕을 해소했기 때문에 ‘토지’라는 것은 (적어도 인간에게는)자산이 아니었다. 땅에서 모종의 생산물이 나오거나 하질 않으니 정착생활을 할 필요가 없고 고정된 장소의 소유권을 지키기 위해 싸울 필요도 없는 시절이었다. 하지만 농경사회가 시작된 이후로는 땅에서 생산물을 만들어낼 수 있게 됨에 따라 토지는 자산으로 여겨지며 토지를 두고 집단 간의 전쟁이 일어나기 시작했는데, 이것이 인류역사상 자산이 아니었던 것이 자산으로 변화한 첫 사례이다.
선사시대의 일만을 논하면 그게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던 것 같으니 비교적 최근의 예를 하나 더 들어보겠다.
현재(2022년 10월 기준) 대한민국에서 커뮤니케이션 앱 중 단연 최강자인 카카오톡이 처음 세상에 모습을 보였을 때를 기억해보자. 지금 기준으로 본다면 카카오톡은 커뮤니케이션 비용이 0에 수렴하고 문자메시지에 비해 실시간 소통성과 직관적인 사용자 편의성 등의 명확한 효용을 가진 존재이자 자산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그 시절 카카오톡이 가진 잠재적 가치가 이정도일 것이라고 상상이나 했는지, 아니 그 전에 카카오톡이라는 것이 생산물을 만들고 가치를 전달하는 엄청난 자산이라고 인식이나 했는지 떠올려보자.
절대 그렇지 못했고 심지어 카카오가 거래소에 상장하고 몇 년 동안 그렇게 큰 주목을 받지도 못했다. 플랫폼(그 당시에는 기차 플랫폼을 의미하기나 했던)이라는 것이 어떤 가치를 지니는지 이해할 준비가 되어있지 않기 때문이었고, 자산과 생산물에 대한 기존의 정의와 패러다임에 깊게 갇혀 있던 전문가일수록 더욱 그랬으리라고 생각한다.
카카오라는 플랫폼이 주는 효용은 다양한 분야에 걸쳐 있지만, 그것들의 공통된 특성은 공급자와 수요자가 효율적으로 만날 수 있는 ‘시장의 형성’이라는 데에 있다. 과거에는 어떤 판매자에게는 멀리 떨어진 사람이 어떤 것을 사고 싶어 하든지 말든지 알 바가 아니었다. 어차피 만나지도 못하고 그 사실을 알더라도 재화를 빠르게 전달할 수단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통신 기술과 운송 수단이 발전함에 따라 물리적 위치의 한계가 대부분 극복되며 공급자와 수요자가 인식할 수 있는 시장의 범위가 넓어졌고, 그 변화와 기회를 포착한 존재가 플랫폼 회사로 발전했다.
가치 있는 것의 범위는 고정되어 있지 않다. 기술이 발전하면서 인간이 인식할 수 있는 대상의 범위는 계속해서 넓어지고, 그에 따라 욕망하는 대상의 범위도 넓어지면서 자산이라고 정의하는 대상들의 범위도 확대되기 때문이다.
비트코인과 같은 암호화폐도 마찬가지다.
중앙 정부의 자의적인 통화정책으로 인한 부작용의 누적에 피로를 느껴 ‘누구 하나도 결정하지는 않지만, 모두가 결정에 참여하는’ 새로운 의사결정 구조가 블록체인이라는 이름으로 탄생한 것이고, 그 블록체인 네트워크를 영속적으로 유지하기 위한 메커니즘이 암호화폐인 것이다.
카카오 데이터센터 화재 사태와 같은 사례들이 중앙화된 데이터 구조가 지닌 ‘단일 실패점(single point of failure)’의 한계를 드러내기 시작했고, 자연스럽게 블록체인의 필요성을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작금의 현실은 비트코인이 탄생한지 겨우 13년이 조금 넘은 상황에서 나타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에 비롯해 비트코인을 비롯한 몇몇 암호화폐들이 각자의 목적에 알맞게 커뮤니티의 힘과 네트워크 가치를 꾸준히 증대시키며 엄연한 자산의 정의를 넓혀가고 있다는 사실에 의심이 없다.
[동굴 속으로 들어간 오마하의 현인]
16세기 영국의 철학자이자 경험론의 창시자 프랜시스 베이컨은 그의 저서 신기관(Novum Organon)에서 자연과 세계를 올바르게 이해하기 위해 피해야할 4가지 선입견과 편견을 우상에 빗대어 주장한 바 있는데, 그 중에는 자신만의 경험이나 환경에 사로잡혀 ‘동굴 속에 들어가’ 세계를 인식하는 편견을 의미하는 ‘동굴의 우상’이 기술되어 있다.
세상의 변화를 최대한 빨리 인식하고 대중의 인식과의 괴리에서 나오는 투자의 기회를 포착하려한다면 자신만의 동굴에서 끊임없이 빠져나오려 애써야 한다. 현재 우리의 인식 모델과 패러다임으로 완벽한 확신에 차서 투자를 할 수 없고 약간의 의혹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 만약 완벽한 확신으로 투자하 수 있다면 그것은 필시 기대수익률이 존재하지 않는 것이 시장의 원리이기 때문이다. 다만 기회의 시간이 끝나기 전에 동굴에서 빠져나와, 확신과 의혹 중 확신의 비중을 최대한 높이는 것이는 것이 진정한 투자자의 무한한 숙제일 것이다.
‘확신만을 갖고 무엇인가를 시작한다면 의혹으로 끝난다. 하지만 약간의 의혹을 갖고 시작함으로써 확신으로 끝난다.’라는 베이컨의 오랜 격언이 동굴에서 벗어나려는 우리에게 큰 힘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