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버스라는 용어가 본질적인 통찰 없이 지나치게 남용되는 것 같다. 그동안 게임 산업이 얼마나 우리 주류 사회에 무시당했기에 3D 아바타만 나오면 마치 미래 혁신 성장동력처럼 포장되는 걸까. 사실 메타버스는 아직까지 명확한 정의나 개념에 대해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은 추상적 용어이다. 그동안 수많은 전문가들이 각자의 정의를 내려왔는데, 대체로 언급되는 3가지 중요한 키워드는 다음과 같다. 1) 사회적(social), 2) 경제적(creator economy) 활동이 벌어지는 3) 가상(virtual)의 세계.
메타버스의 개념을 그 어원인 "meta(초월적) + universe(우주)"로 돌아가 충실하게 해석해보자. 먼저 가상의 우주 공간이 반드시 3D로 만들어질 필요는 없다는 포괄적 전제가 가능하다. 오랫동안 인간의 지각능력이 3차원으로 단정짓던 우주를 상대성 이론은 4차원, 초끈이론이 11차원으로 정의한 것을 상기하면, 가상의 초월 우주가 3차원일 필요는 없는 것이다. 즉, 1차원 혹은 2차원의 가상 공간에서 사회적, 경제적 활동이 풍부하게 벌어질 수 있다면, 유튜브나 인스타그램에서부터 추억 속의 PC통신이나 싸이월드까지도 메타버스적 요소를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번에는 메타버스를 더욱 엄격한, 협의의 정의로 살펴보자. 이 경우 로블록스와 마인크래프트를 포함하여 메타버스의 대표작으로 손꼽히는 대부분의 IP가 사실 메타버스가 아닌 마이크로버스(microverse)에 불과하다고 주장할 수 있다. 로블록스는 생산성과 접근성의 향상을 위한 수많은 제약을 가지고 있는 (마치 레고처럼) 폐쇄적 세계관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ref: "The Roblox microverse",
https://stratechery.com/2021/the-roblox-microverse)
메타버스와 마이크로버스를 나누는 속성은 A. 무신뢰성(trustless), B. 개방성(openness), C. 상호운용성(interoperability), 그리고 D. 결합성(composability)이라고 생각한다.
* 사실 이 4가지 속성이 MECE하게 분류되지는 않는데, 무신뢰성은 다른 속성들의 상위개념이고 결합성은 다른 속성들을 기초로 만들어진 응용적 속성에 가깝다.
A. 무신뢰성: 어떠한 제 3자의 신뢰를 할 필요가 없어야 한다. 플랫폼 사업자가 시스템 조작(거대 게임회사들의 확률 조작 사건을 상기하자)을 일으킬 수 없으며, 유저의 데이터/자산 주권이 훼손될 것을 걱정할 필요도 없다. 태양이 어느 날 갑자기 서쪽에서 뜨지 않는 것처럼, 우주의 자연법칙의 하루아침에 바뀔 수 없다.
B. 개방성: 메타버스라고 일컫는 게임들은 얼마나 진정성있게 개방되어 있는가? 우주는 무한히 개방적이다. 사용자로서 뿐 아니라 시스템 개발자로서 서비스의 모든 레이어에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
C. 상호운용성: 로블록스에 있는 아이템을 마인크래프트로 가져갈 수 있는가? 우리는 지구에 있는 물건들을 가지고 화성으로 가져가 사용할 있다.
D. 결합성: 우리는 이종 메타버스에 있는 각각의 기능들을 쉽게 결합시킬 수 있는가? DeFi 시장에서 일어나는 혁신처럼, 기존에 존재하는 인프라나 서비스의 조합으로 신뢰성 있게 동작하는 새로운 기능의 제품을 조립해서 만들 수 있어야 한다.
명확한 결론을 너무 길게 적었는데 결국 진정한 메타버스는 퍼블릭 블록체인을 기반으로 형성될 수 밖에 없다. 당신은 한 순간에 운영자에게 우주의 법칙이 조작될 수도 있고, 평생 열심히 만든 자산을 다른 우주로 옮길 수도 없는, 그 위험하고 답답한 우주에서 살고 싶은가?
페이스북 김서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