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직 금융인으로써 08년부터 주식투자를 했지만 참 올해만큼 현타가 든 해가 없었던거 같다.
올해 한국 증시를 지배한 키워드는 정치다.
금투세, 탄핵, 공매도금지, 밸류업 등.
투자자들은 이 시즌이 되면 다들 휴가를 가면서 내년에 뭘 사야 하냐? 장 어떨거 같냐? 어떤 산업이 좋아 보이냐? 이런 이야기를 해야 정상이다.
그런데 지금 보면, 다들 좌빨이니 수꼴이니 하면서 싸우기 바쁘다.
물론 삼성전자의 추락이 증시 하락에 한 몫 했고 엔 캐리 트레이드니 뭐니 많았다.
그러나 정치적 대격변이 한국의 증시 변동성에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산업은 어떤가.
삼성전자는 조롱의 대상이 되었고, 화학은 IMF때도 증자 한번 안 했던 롯데케미칼이 난리가 났다.
게임은 중국게임의 M/S가 압도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자동차도 중국산의 품질이 올라오고 있다.
조선도 일본이 정치적 격변 사이에 기회를 잡아보려 호시탐탐 기다리고 있다.
VC가 드라이파우더가 많다지만 정말 좋은 물건이 아니면 선뜻 투자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환율은 1500이 가까워지고 있다.
잠재성장률은 1%대에 가까워지고 있고, 한국은행은 내년 1.9% 성장을 전망하였으나 글로벌 IB들은 그 이하를 전망하고 있다.
5년 평균 ROE는 7%가 깨졌다.
이제 20~30대들이 더 이상 기업에서 승진하여 임원, 대표가 되고싶어하지 않는다.
모두가 미국주식, 코인을 하면서 FIRE족이 되고 싶어하고, 40살 전에 은퇴하고 싶어한다.
금융인은 산업이 잘 돌아가야 존재할 수 있다.
모두가 FIRE를 하고 싶어하는 나라에서 금융업이 될 수가 없다.
의 스토리가 굉장히 인상깊어 인용해본다.
고대인들이 "삶의 의미는 무엇인가?"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고도로 진보된 외계 문명들에게 파랑새를 보내 답을 찾고자 했다.
그런데 접촉한 문명들은 모두 갈등과 좌절을 겪으며 모두가 종말을 원하고 좌절하여 멸망하였다.
그래서 그 파랑새는 "어차피 삶의 끝은 죽음인데, 왜 살아야 하는가?"라는 의문을 가지며 인류를 멸망시키려고 한다는 스토리다.
지금 한국이 그런거 같다.
고환율, 기업의 경쟁력 약화, 젠더 갈등, 정치 갈등에 대해서 누구도 솔루션을 제시하지 않는다.
기업인들은 경쟁력 약화와 자금조달이 안되어 힘들어하고, 금융인들은 산업이 안되니 굶주리고 있다.
스타트업 대표들은 창업하여 글로벌 기업으로 키우고 싶어하는게 아니라 네이버-카카오에 팔거나 IPO하여 엑시트하고 싶어한다.
사회 초년생들은 40살 전에 FIRE를 하기 위해 코인과 미국주식에 목을 매고 있다.
정치인은 누구도 솔루션을 제시하지 않고 권력획득을 위해 싸운다.
도대체 한국에 왜 투자해야 하는가?
20살 이후로 어느 때보다 이 질문에 답하기 어려워 졌음을 스스로 느끼고 있다.
하긴 사농공상의 나라에서 금융업을 직업으로 선택한게 죄라면 죄.